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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15   |  조회 1,519회

제56호: 대가야의 정견모주(正見母主) 신화

본문

​​​​제56호: 대가야의 정견모주(正見母主)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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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지역에서는 매년 봄 대가야 축제가 열린다. 경상남북도의 낙동강 유역과 그 서쪽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던 가야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철기를 바탕으로 한 빛나는 문화를 창조했다. 특히 지금의 고령 지역에서 번성했던 대가야는 총 16대에 걸쳐 520년간 존속하면서 금관가야의 뒤를 이어받아 가야연맹체의 맹주로 활약하다가 562년 신라의 진흥왕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망과 함께 영욕의 세월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지만 지산동 고분 등의 유적과 고령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설화 등을 통해 옛 가야의 흔적을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대가야의 건국 신화로 알려진 정견모주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야산의 산신인 정견모주라는 여신이 천신 이비가와 감응하여 두 아들을 얻었다. 맏아들은 뇌질주일이고 둘째 아들은 뇌질청예라 하였다. 뇌질주일은 대가야국을 건설하여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뇌질청예는 김해에서 가락국을 건국하여 수로왕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정견모주는 단군신화의 웅녀, 주몽신화의 유화, 혁거세신화의 선도산성모 등과 상통하는 지모신(地母神)의 성격을 지닌다. 이와 같은 여성시조신의 전통은 주로 북방계 신화에서 두드러지는데 가락국의 또 다른 건국신화인 수로왕의 탄생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그 특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구지가>라는 노래를 통해 잘 알려진 수로왕 탄생설화는 모계의 개입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여섯 개의 알에서 시조가 탄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철저한 부계 중심의 사고를 보여준다. 정견모주 신화에서 그 둘째 아들이 가락국을 세웠다고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새로운 건국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경우 선후관계를 따져보자면 정견모주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먼저 형성되었고 이후 부계 중심의 수로왕 탄생이야기가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시조신의 탄생에 모계신의 역할이 부여된 경우와 모계에 대한 언급 없이 부계만이 강조된 경우로 나뉘는 것은 모계 중심의 체제를 유지하며 지모신을 숭상하던 단계와 남성 중심의 부계 혈통을 강조하는 단계가 분화되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가야 건국신화에서 보였던 모계중심적 특징은 이후에도 이 지역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월광태자의 계통을 부계가 아닌 모계 정견모주의 몇 대손으로 기록한 예로 미루어 대가야가 멸망하기 직전까지도 지모신 정견모주의 권능이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이후까지도 정견모주 신당을 모시고 그곳에서 산신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생산과 풍요를 담당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신성화는 선사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모계 중심의 사회가 종언을 고한 후에도 민간의 신앙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 가야산의 산신으로서 온 세상을 품고 건국의 주체를 생산해낸 정견모주 역시 그 위대한 모성성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지역민들에게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지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경북대신문 ​ 2010.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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