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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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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09   |  조회 2,087회

제50호: 잊지 말아야 할 팔공산 유역의 미륵신앙 - 불굴사와 홍주암(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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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갓바위 부처와 같은 현격한 미륵상이 대구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 종교권력 간의 경쟁에서 밀려 그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고유문화의 흔적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공산 유역에 미륵신앙의 다른 흔적이 없을 리 없다고 생각한 필자가 주목한 곳은 팔공산 동남쪽에 있는 불굴사(佛窟寺)와 그 왼편 절벽에 위치한 석굴 홍주암(紅珠庵)이다. 불굴사는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홍주암에서 수도하여 득도한 것을 계기로 신문왕 10(690) 옥희대사(玉熙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부속 암자가 12곳에 이르고 기와집의 수가 5백여간에 달하는 거찰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크게 훼손되어 경종 3(1723)에 중창했으나 다시 영조 12(1736)에 큰 비로 산사태가 일어나 전각들이 모두 매몰돼 폐허로 변한 것을 송광사(松廣寺)에 머물던 노승이 찾아와 부분 중창하여 오늘과 같은 단촐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일주문이나 천왕문도 없고, 건물 기둥의 주련(柱聯)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는 등 외형상으로도 보통의 사찰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절을 꼼꼼히 살펴보면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종교적 상징들은 과거 이 절이 다른 절과는 더욱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불굴사와 홍주암이 갖는 특징은 미륵, 여성성, 보주(寶珠:구슬)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먼저 불굴사와 홍주암은 미륵과 관련이 깊다. 불굴사는 팔공산 관봉 남쪽 환성산(環城山)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절에서 마주보이는 안산인 무학산(舞鶴山) 중턱에는 커다란 미륵상이 서서 불굴사를 가호하듯이 굽어보고 있다. 또한 불굴사의 본당인 적멸보궁에는 건물 내부에 석가불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안치되어 있는데, 사리탑 뒤편 중앙에 위치한 탱화에는 과거불인 연화불, 현재불인 석가불과 나란히 미래불인 미륵불이 함께 모셔져 있다. 홍주암 바로 위에는 절벽 사이를 비집고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獨聖閣)이 자리하고 있다. 나반존자는 석가불의 10대 제자 중 신통력 제일로 평가되는 분으로 미륵불이 와서 중생을 구제할 때 함께 하기 위해 열반에 들지 않고 속세에 홀로 남아 있는 분이다. 이처럼 불굴사와 홍주암은 신앙체계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상징물에는 미륵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과거 이 절이 미륵신앙이 번성했던 도량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본당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았지만, 이곳에는 큰 불상이 두 개 있다. 적멸보궁 앞쪽에 위치한 전각 안에 모셔진 석조입불상(石造立佛像)과 홍주암 석벽을 감실처럼 조금 파내고 돋을새김으로 조성한 부처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불상은 모두 매우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석조입불상은 조선시대에 산사태로 매몰되었다가 송광사의 스님이 현몽을 하고 흙 속에서 찾아내어 모셨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과거에는 이 입불상이 신앙의 중심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도 자연석 위에 좌대로 놓고 그 위에 안치하고 있어 원래는 보호 전각이 없이 자연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슬을 들고 있는 왼팔 부분이 없어져 근래에 만들어 붙이고 입불상을 보호하는 전각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왼팔을 새로 만들어 붙여 이를 약사불로 부르고 새로 지은 전각을 약사보전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 입불상이 본래부터 약사불로 불렸다는 근거는 없다.

 

 얼굴을 보면 입이 조그맣고 입주변이 움푹 들어간 모습이어서 누가 봐도 여성적인 모습이다. 입술을 빨갛게 채색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기도 하다. 입불상을 모신 전각도 앞쪽 벽면이 유리로 되어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게 했고, 입불상도 전각의 모퉁이를 바라보고 서 있다. 원래 관봉 갓바위 부처를 바라보고 있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를 보호할 전각을 사찰의 배치에 맞춰 앉혔기 때문이다. 관봉의 갓바위는 갓을 쓴 남성상인데 비해 이 입상은 여성상이다. 그래서 입불상 머리 위의 육계를 가리켜 족두리를 쓴 것으로 지칭하기도 하고, 두 부처상을 부부로 이해하기도 한다. 갓바위가 있는 관봉과 이곳 불굴사 사이에 음양리라는 지명도 있다. 사찰측에서는 갓바위 부처를 할아버지 약사불, 불굴사 입불을 할머니 약사불이라 부르고 있다. 불교의 부처는 남녀의 성별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약사불을 할아버지?할머니로 부를 리가 없다. 원래는 할배 미륵, 할매 미륵으로 불렸으리라. 이 분이 들고 있는 보주(구슬)은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김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