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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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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04   |  조회 2,002회

제45호: 대구 칠성바위와 경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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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대구역 광장에 칠성바위가 있다. 원래 지금의 시민회관 자리에 있던 공회당 옆 공원에 있었는데 1973년도에 공회당을 헐고 시민회관을 지으면서 부지가 모자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칠성바위에 대해서 정조대에 관찰사로 대구에 왔던 이태영의 꿈과 관련된 일화가 민간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 후 그의 후손이 다시 관찰사로 와서 칠성바위 곁에 의북정(依北亭)이란 정자를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의북정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건립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오횡묵이 남긴 함안총쇄록1889(고종 26) 74일의 일기에 당시 관찰사였던 김명진(金明鎭)의 외증조부가 관찰사로 와서 칠성바위에 빌어 그의 외조부를 낳았는데, 김명진이 이곳에 다시 부임하니 감회가 일어 의북정이란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김명진은 안동김씨 김석균(金奭均)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김세균(金世均)의 양자로 갔는데, 김세균의 장인(김명진의 외조부)이 관찰사로 왔던 이태영의 아들인 이의두(李義斗)이다. 이태영이 부임해 와서 당시 민간의 풍습에 따라 칠성바위에서 빌어 득남했고, 당시에 칠성바위가 북두칠성과 같은 배치를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므로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지역에 칠성신앙이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북대학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교표(교기 가운데의 문양)는 감을 상징하는 꽃문양 안에 원을 두르고 그 안에 첨성대와 여섯 개 별이 들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별은 대학 개교 당시에 있던 5개의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상징한다고 한다. 교포는 개교 초창기에 공모에 의해 국전초대작가(수체화부문)李景熙 화백의 작품이 채택된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을 뿐 공모 과정이나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간 단과대학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교표 속 별의 개수도 8, 9, 20개로 따라 변해오면서 경북대의 상징적 정체성에 적지 않게 혼란이 있었다. 근래 교기, 교표의 디자인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다시 여섯 개의 별로 환원되었는데, 이에 맞추어 그 의미도 새롭게 정초(定礎)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에 필자는 교표에 대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여 여섯 개의 별을 남두육성(南斗六星)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해 본다.

 

 고구려 벽화 등에서 짝으로 그려지는 데에서 보듯이,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은 형태가 비슷하므로 비슷한 의미로 존숭되어 왔다. 즉 남두육성에 대한 존숭은 크게 보아 칠성신앙에 속한다. 그리고 칠성신앙은 미륵신앙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교포 속의 남두육성은 칠성바위 뿐만 아니라 팔공산 갓바위 미륵불과도 연관성이 있고, 경북대 교가에도 등장하는 화랑들이 지낸 초제(醮祭)와도 연결이 된다. 또한 첨성대를 북두칠성의 기운을 모으고 초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남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첨성대, 북두칠성과 같은 의미지만 남쪽과 더 친연성이 있는 남두육성이 경북대의 대표 상징이 된다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칠성바위가 표출해온 이 지역의 칠성 존중의 전통(진리의 존중), 갓바위 미륵불이 있는 팔공산(미래의 개척)이 경북대학교 교표 속 첨성대의 탐구정신과 하나의 맥락 속에 놓여 경북대학교는 한국에서 보편적 의미를 가지면서도 지역적 개성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문화적 자산과 정신적 원천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김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