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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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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03   |  조회 1,424회

제44호: 낙동강 : 창조적 새벽을 여는 영남의 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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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의 대문호 백운 이규보는 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발언한 적이 있다. “저녁이 아닌데도 사방이 캄캄하고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거센 물결이 일어난다. 눈 같은 파도가 쿵쿵 바위에 부딪치는 모습은 마치 진()나라와 진()나라가 팽아(彭衙)에서 싸움을 벌이는 듯하다.” 급하고 힘차게 흐르는 강물을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빠른 유속에는 역동적 변전(變轉)과 창조적 모색이 있다. 강은 멈추어 선 듯하지만 깊게 흐르고, 햇살을 만나 은빛융단으로 빛나다가 노여움 가득한 목소리로 바위를 강타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낙동강 연안에 사는 조선의 영남사인(嶺南士人)들은 물이 시작하는 개울과 물이 끝나는 바다와 달리 의 상상력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다.

 

  영남학의 역동성과 독창성은 그 연안지역의 학문인 강안학(江岸學)에 깊게 내장되어 있다. 영남은 16세기를 거치면서 퇴계와 남명을 중심으로 이른바 영남학파를 형성한다. 이 두 학파는 강좌와 강우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도우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 일련의 사인들이 그 중간 지역에서 굴기하여 영남사상사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소재 노수신, 여헌 장현광, 한주 이진상은 그 대표적이다.

 

 상주의 노수신은 김세필과 홍인우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초기 양명학자다. 그는 나흠순이 지은 ??곤지기(困知記)??의 영향을 받아 리기일물설(理氣一物說)’, ‘인심도심체용설(人心道心體用說)’, ‘욕망긍정설등을 제기했다. ?곤지기발?에서 그는 내가 늦게 ??곤지기??를 얻어 보니 그 말이 정대(正大)하고 정미(精微)하여 발명하지 못한 것을 많이 발명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노수신의 학문적 경향에 대하여 퇴계는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며, 편지를 보내 그의 학문이 순정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질타하였다.

 

 선산의 장현광은 노수신의 리기일물설인심도심체용설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었다. 도일원론(道一元論)에 바탕을 둔 그의 리기경위설(理氣經緯說)’은 바로 이것을 토대로 마련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퇴계 근본주의자들은 장현광의 학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졸재 유원지, 활재 이구, 갈암 이현일이다. 이들은 장현광의 리기설이 율곡 이이의 기발일도설(氣發一途說)’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그의 학설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퇴계설을 옹호하고 나섰던 것이다.

 

 성주의 이진상은 리발일도설(理發一途說)’심즉리설(心則理說)’로 이 지역의 일원론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강안학의 독창성을 극대화하였다. 이는 퇴계의 심합리기설(心合理氣說)’을 주리적 측면에서 더욱 강화시킨 측면이 있으나 퇴계학파의 이원론적 전통과는 상당히 어긋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역시 퇴계 근본주의자들의 신랄한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1897??한주문집??이 발간되었을 때 퇴계학파에서는 이진상의 학문을 이단으로 인식하고, 도산서원에서는 그의 문집을 돌려보냈으며 상주향교에서는 그 문집을 불태우기까지 하였다.

 

 강안학은 이처럼 영남학파 안에서 새로운 사고로 사상사적 새벽을 열어가고 있었다. 퇴계학과 남명학이 상보적인 경쟁관계를 유지하다 인조반정 이후 영남학파는 퇴계학파로 단일화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낙동강 연안지역인 강안지역에서는 퇴계학을 교조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하였다. 끊임없는 성찰과 모색으로 세계에 대한 창조적 시각을 구축하면서 영남학의 새로운 기치를 내걸었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언덕에 서면 시간이 보인다. 헤르만 헷세는 ??싯타르타??에서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라고 하였다. 흘러가고 있는 것과 흐르는 것, 그리고 흘러오고 있는 것이 모두 현재성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안학은 오랜 시간을 관통하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여는 현재의 학문이다. 이것은 강안학이 좌우와 남북을 회통(會通)하면서도 창조의 눈을 들어 발상을 전환하는 그런 학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우락(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