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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01   |  조회 1,753회

제42호: 동화사 부도, 스님들의 마지막 처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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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죽으면 대체로 땅에 묻히지만 불교에서는 화장을 통해 인간의 육신을 자연에 회귀시킨다. 이때 사리가 나왔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나왔다면 얼마나 나왔는가에 따라 우리는 흔히 그 스님의 깨달음 정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리가 사찰에서는 어떤 형태로 보존될까?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과 부도(浮屠)가 그것이다. 탑이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곳이라면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곳이다. 오늘은 이 가운데 동화사 주변에 모셔진 부도에 대하여 말해 보도록 하자.

 

 부도는 부도(浮屠), 불타(佛陀), 부두(浮頭), 포도(蒲圖), 불도(佛圖)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되는데, 붓다(buddha)를 음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불교는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니 부도교라고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곳을 부도라 하고, 진리의 세계를 깨달은 사람을 불타혹은 줄여서 이라 하여 근원이 같은 두 말을 변별해 쓰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지만 이 당시의 문헌에는 부도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바로 부도가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삼국유사에 원광법사의 부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 시기, 627~649년경을 대체로 부도가 처음 세워진 시기로 본다. 그러나 당시의 실물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다만 844년에 조성된 전흥법사염거화상탑(傳興法寺廉居和尙塔)을 가장 오래된 부도로 추정할 따름이다.

 

 부도는 가람배치와는 관계없이 사찰의 앞이나 뒤쪽 등 일정한 구역에 세운다. 그리고 여기서 일 년에 한 번씩 의례를 행한다. 이 의례는 승려가 입적한 날과는 무관하게 매년 2월에 또는 10월에 행하는데, 먼저 불보살에게 권공의례(勸供儀禮)를 행하고 부도의 주인공에게 시식의례(施食儀禮)를 행한다. 우리가 묘사를 지낼 때 산신에게 제를 드리고 다시 땅 속에 묻혀있는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동화사 주변에는 세 곳의 부도가 대표적이다. 금당암 앞의 석조부도, 동화사 부도군의 부도, 부도암의 부도가 그것이다. 금당암 앞의 부도는 현재 보물 제 601호로 지정되어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동화사에서 1km정도 떨어진 도학동의 내학(內鶴)마을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와 복원한 것이라 한다. 높이는 172cm로 기단부의 지대석만 방형이고 그 위의 것들은 모두 팔각원당형의 기본형을 갖추고 있다.

 

 동화사 부도군의 부도는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화사의 관문인 동화문을 지나 돌 다리 북편에 자리한 10개의 부도가 그것이다. 석종형의 이 부도들은 금당암 앞의 석조부도에 비해 그 제작 기법이나 양식이 시기적으로 상당히 늦은 것으로 17세기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부도암의 부도는 문화재자료 제 34호이다. 동화사에서 팔공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부도암 동편에 나 있는 양진암과 염불암의 갈림길에서 염불암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동편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이것은 기단석과 탑신석, 옥개석을 갖추고 상륜부는 결실된 팔각원당형인데, 비교적 소형으로 임란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스님들의 사리혹은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동화사 주변의 부도는 모두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죽음은 감각의 후식, 충동의 실이 끊어진 것, 마음의 만족, 혹은 비상소집 중의 휴식, 육체에 대한 봉사의 해방 같은 것. 이 때문인지 스님들의 죽음은 쓸쓸하기보다는 단아하다. 팔각원당형 혹은 종형으로 이승의 생을 갈무리하고 저리도 고요히 가을 하늘을 지키고 섰으니 말이다.

 

정우락(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