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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22   |  조회 1,856회

제7호: 달구벌 천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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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히 아는 바처럼, 얼마 전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려 하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다. 수도 이전은 인구를 비롯한 제반 분야가 현 수도로 과도하게 몰리면서 드러난 기형적 현상을 해소하기 위하여 내려진 불가피한 결단이었으나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 대신 행정도시가 몇몇 거점 지역에 건설되는 등 용두사미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수도권 집중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묘책은 달리 없어졌으므로 국가 패망(?)의 시점만 기다리는 꼴이 된 셈이다

 

 도읍을 옮기는 일이 그토록 어렵다는 것은 이미 천수백 년 전 조상들도 겪었다. 신문왕 9(689), 신라는 삼국 통합 후 늘어난 인구와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왕도를 달구벌(達句伐)로 옮기려고 시도하였다. 당시 신라의 영토가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으로 낙착된 상태였으므로 수도(경주)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동남쪽으로 치우쳐 위치한 셈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증가한 인구와 경제력을 수용하기에는 공간적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경주는 초기 국가 성립기로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수도인 탓에 통일국가에 어울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경주 자체를 새로운 계획도시로 일신하기에는 곤란한 면이 너무 많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신라는 마침내 천도를 결정하고서 달구벌(대구)을 대상지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달구벌 천도 기도는 최종 마무리 단계에서 실패로 끝났다. 흔히 계획 단계에서 실패한 것이라 보기도 하나, 탁상의 공론이 미과(未果)’란 표현으로 기록상에 남겨진 사례는 전혀 없다. 따라서 이는 상당할 정도의 계획적 도시 건설이 진행되고 난 뒤 직접 실행하려다가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함이 옳다. 신문왕을 줄곧 지지하여 온 측근들조차 오랜 기반을 가진 경주를 벗어남으로써 잃는 것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막상 실행을 눈앞에 두고 반대하였던 것이다. 이는 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여하튼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당시 왜 하필 달구벌이 그 대상으로 선정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달구벌이 상당히 넓은 벌판을 끼고 있다는 점과 함께 원래의 신라 영토인 영남 일원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내륙 교통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는 금호강과 낙동강이 위치하여 수로 교통에서 유리하다는 점도 크게 고려되었을 터이다. 한편 거기에는 또 다른 비밀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달구벌이라는 지명을 통하여 유추된다.

 

 달구벌은 달벌로도 불리며 때로 달구화(達句火)로 표기되기도 한다. ()의 훈이 이므로 바로 벌과 같아 옛사람들은 이를 달구벌로 읽었다. ‘()’은 곧 벌판, 들판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근은 달구인 셈이다. ‘달구는 곧 로도 축약되므로 원래 닭이 그 원형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재 의 표준 발음은 이지만 경상도 지역에서는 달로 발음한다. 받침인 중 묵음(?) 된 것은 뒤에 다른 글자가 올 때에는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닭똥을 달구똥, 닭장을 달구장, 닭새끼를 달구새끼와 같이 발음하는 사례이다. 따라서 달구벌의 원형도 닭벌이었는데 이것이 달구벌이나 달벌로 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달구벌은 닭과 관련된 지명임이 분명하다. 사실 닭을 나타내는 말을 국명으로까지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중심 세력이 닭을 조상으로 여겨 숭배한 토템 집단임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신라의 김 씨가 자신들이 거주하던 숲을 계림이라 부른 사실이 떠오른다. 김 씨들은 주도권을 잡으면서 계림을 신라의 국명으로까지 승격시켰다. 이로 보면 달구벌 세력과 김 씨는 모두 닭을 조상신으로 숭배하고 나라이름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신라가 새로운 왕도로 달구벌을 선정한 것에는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내재되어 있겠지만, 그것은 달구벌 세력과 신라 왕족 김 씨의 친연관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김 씨 족단의 본향인 달구벌로의 천도 기도는 수구초심의 심정에 의한 회귀가 아닐는지?

 

주보돈(경북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