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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21   |  조회 2,180회

제6호: ‘원효’와 ‘강수’의 이름 풀이

본문

​​삼국유사』 「원효불기(元曉不?)에서 원효의 속성(俗姓)은 설()이고, 스스로 원효’(元曉)라 칭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를 시단’(始旦)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원효의 성명 자료는 네 가지가 된다. 원효의 속성 ’(), 법명 원효’(元曉), 7세기의 신라인들은 그를 부른 시단’(始旦)이라 불렀고, 아명은 서당’(誓幢)이었다. 이 네 낱말은 어떻게 풀이되며,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진 것일까?

 

 원효의 속성 ’()은 그 뜻이 ’(새해 첫날)이다. 한글이 없는 당시에 이라는 한자를 빌려 을 적은 것이다. 15세기 한글 문헌에서 은 새해 첫날, ’(나이)의 뜻을 함께 가진 낱말이었다. 설을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명절)’(나이)은 같은 기원에서 분화된 낱말들이다. 에는 처음 시작함의 뜻이 있다. 그리하여 법명 원효’(元曉)는 삼국유사의 풀이대로 불교를 처음으로 빛나게 함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원효’(元曉)의 뜻을 한자어 그대로 풀면 첫 새벽이 되는데 이는 첫 아침과 같고, 새해의 첫 아침인 과 동일한 의미가 된다. 원효’(元曉)에는 으뜸 깨달음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원효대사가 스스로 붙인 이 이름은 자신의 성인 의 뜻을 살리면서 동시에 자신의 깊은 깨달음에 대한 자부심을 함축하고 있다.

 

 당시의 신라인들이 원효를 가리킨 시단’(始旦)을 나타낸 말이다. 오늘날 설날을 한자어로 원단’(元旦)이라 한다. 원단은 곧 원효아침을 뜻하는 ’()이 결합한 것이다. ‘처음 시작하다’, ‘아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원단은 처음 시작하는 아침을 뜻하며 이것은 곧 과 같다. 당시 신라인들은 시단’(始旦)이라 적어놓고 이를 로 읽었을 것이다. 그러니 ’()은 음독표기가 되고 시단’(始旦)의 훈독표기가 된다. 시단’(始旦)’()을 뜻으로 적은 표기이다. 일본어의 한자 훈독 방식은 이와 같은 것이다. ‘원단’(元旦)으로 적지 않고 굳이 시단’(始旦)으로 표기한 까닭은 의 초성 ’()의 초성을 통해 표기해 내려는 의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이러한 설명은 원효의 속성 ’()과 법명 원효’(元曉), 당시 신라인의 속칭 시단’(始旦)이 갖는 삼각관계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시단’(始旦)은 동일한 ’(새해 첫날)을 나타낸 것이고, ‘원효’(元曉)의 뜻을 살린 한자어 법명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라는 낱말이 7세기에 이미 존재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원효의 아명 서당’(誓幢)시단’(始旦)의 이표기로 판단된다.

 

 강수(强首)의 이야기는 삼국사기46열전에 실려 있다. 강수의 어머니가 꿈에서 뿔 달린 사람을 보고 임신하여 강수를 낳았다. 신라 태종 때 당나라에서 보낸 문서를 강수가 막힌 데 없이 풀이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강수를 불러 이름을 물었다. 강수가 대답하기를 신은 임나가야 사람이며 이름은 우두’(牛頭)라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경은 머리에 높은 뼈가 있으니 강수선생(强首先生)이라 칭함이 가하다고 하였다. 태종은 천한 짐승 이름이 들어간 우두’(牛頭)가 학덕이 높은 인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우두강수’(强首)로 바꾸어 준 것이다.

 

 ‘우두’(牛頭)를 훈독하면 쇠머리가 된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牛頭우두가 아니라 쇠머리로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강수’(强首)도 훈독하면 센머리이다. ‘의 훈은 -’이기 때문이다. ‘센머리로 풀이되는 강수’(强首)쇠머리로 풀이되는 우두’(牛頭)는 같은 어형을 약간 달리 적은 것이 된다. ‘강수’(强首)우두’(牛頭)보다 더 품격이 높은 둣한 느낌을 줄 뿐이다.

 

 원효는 큰 깨달음과 민중을 위한 불교를 실천하였고, 강수는 높은 학문을 이룬 후에도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은 덕이 있었다. 그래서 이 분들의 이름은 더욱 빛난다.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