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Youngnam Cul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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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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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19   |  조회 1,841회

제5호: 영남지역 그 보수의 뿌리

본문

​​ 영남지역은 역대로 보수성이 강하다고 한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니 우리 지역과 보수성을 결합시켜 또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가리라. ‘너는 진보인가, 아니면 보수인가하면서 어느 한 쪽에 서기를 강요받을 수도 있고, ‘사이를 내세우며 자신을 연막 속으로 피신시킬 수도 있다. 영남지역 사람들은 과연 보수적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하자면 그 개념부터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그럴만한 지면적 시간적 여유가 나에겐 없다. 어쨌든 우리 지역에 강한 보수적 인자가 있다고 하니 그 뿌리를 향해서 잠시 들어가보자.

 우선, 분지라는 자연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영남은 ()’()’이다. ‘은 충청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에 있는 조령(鳥嶺)과 죽령(竹嶺)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 준령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영남이다. 이처럼 영남지역은 영지남(嶺之南)’에 위치하면서도 대체로 분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 같은 자연환경이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게 했다. () 언덕() 안에 갇힌 대구는 더욱 그러하다. 분지를 기반으로 한 문화적 독자성이 이 지역 사람들을 더욱 보수적이게 했을 것이다.

 신라문화를 철저히 계승하였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성호 이익은 영남지역 양반문화의 근원을 신라의 골품제도와 화백제도에서 찾은 적이 있다. 신분 간의 배타성을 특징으로 하는 골품제도와 합의정신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화백제도가 영남문화를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1135년 묘청이 유교주의와 사대주의 세력에 대항하며 난을 일으켰다가 신라 중심주의에 입각한 김부식 일파의 진압으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신라 정통론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더욱 견고한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후기 영남 선비들의 정치적 소외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영조 24년에 일어난 무신난이 그 계기가 된다. 소론의 과격파들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자 난을 일으켰으며 여기에 남인들도 일부 가담하였다. 이 난이 진압된 후 경상우도는 과거조차 보지 못하는 정거(停擧)를 당하면서 반역향으로 매도되었고, 노론 집권층과 유연한 관계를 유지했던 일부 집단을 제외하면 조선조 말기까지 영남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 이에 따라 영남유생들은 노론정권의 견제수단으로 공론(公論)을 중시했으며, 효종 원년 경상도 유생 9백여 명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묘종사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영남 선비의 이 같은 정치적 소외는 자기결속력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퇴계 이황의 주리적 전통 역시 보수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원리로 작용하였다. 인조반정 후 남명학파가 몰락하자 영남지역의 일부가 노론 세력에 흡수되기도 했으나 영남은 남인을 모집단으로 하는 퇴계학파로 단일화되었다. 결국 영남학파는 퇴계학파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퇴계의 철학은 주리설(主理說)로 요약된다. 이것은 본성의 존귀성에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인간의 내면적 진실성을 주체적으로 성찰하는 방향으로 체계화 되어 있다. 당대의 전도된 가치를 올바르게 인도하고자 하는 현실성이 있었으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 또한 있었다. 정통론과 도통론에 입각한 성리학적 순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강한 보수성을 지녔던 것이다.

 영남지역은 경직된 보수성을 타개하기 위하여 내재적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며 이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나 이 같은 사상이 사회변혁운동으로 발전한 것은 그 좋은 예가 된다. 이처럼 우리 지역은 보수의 연원도 깊지만 그것의 경직성을 타개하기 위한 운동 역시 안으로부터 일어나기도 했다. 영남지역을 관류하는 낙동강은 강의 좌우를 아우르며 무한한 가능성으로 흐른다. 보수와 진보가 어울려 춤추는 상생의 바다, 영남의 강 낙동강은 그런 바다를 꿈꾸며 흘러들고 있다. 너는 네가 아닌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나 또한 너일 수 있다.

 

정우락(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