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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59   |  조회 2,951회

제41호: 경상도 사람들의 언어습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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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의 여러 방언에는 지역마다 독특한 언어 표현이 있다. 예컨대, ‘고맙다라는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쓰는 말이 방언에 따라 다르다. 먹을 것 귀한 시절에 자기 먹을 것도 넉넉지 않은 이웃이 음식을 노나 주었을 때, 경상도 사람은 아이고 미안시럽구로! 이거 고마바서 우짜노라 했을 법하다. 함경도 사람은 아심채이오! 아슴채이꾸마!”라고 말했고, 전라도 사람은 아심찬이! 아심찬이!”라는 말을 쓴다.

 

 이처럼 구체적인 감정 표현은 물론 말하는 습관이나 말하는 태도에서도 지방 특유의 것이 있다. 경상도 방언에 나타난 이 지역 사람들의 언어 습관 혹은 언어적 태도라 할까 이런 것 몇 가지를 알아 보자.

 

 조선시대의 전통적 유풍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경상도 사람들은 과묵하고 말수가 적은 성향이 높다. 예로부터 말 많은 사람을 경계하였다. “말 많은 집은 장 맛도 쓰다”, “세 치 혀 밑에 도끼 들었다와 같은 속담은 말 많은 태도를 경계하는 것이다. 경상도 남자가 퇴근하여 아내에게 말하는 세 마디는? “밥 도오”, “아아는?”, “자자가 그 답이다. 우스개로 하는 이바구지만 경상도 사람의 언어 습관을 잘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입을 조심하고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계속 교육 받아온 결과일지 모르겠다.

 

 또 하나, 경상도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야단스럽게 말하는 것은 못 배워 먹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가르쳐 왔다. 발음에서 입을 적게 벌린다는 것은 노력경제 원칙으로 보면 에너지 소모가 적으니 좋을 법도 하다. 그러나 입을 적게 벌리면 모음들간의 구별이 잘 안되는 결과가 생겨난다. 모음은 입을 벌리는 정도에 따라 구별되기 때문이다. 는 입을 적게 벌리고, 는 중간 정도로, 는 제법 많이 벌리는 것이 발음상의 특징이다. , , 의 입벌림도 이와 평행적이다. 세 단계 입벌림의 정도가 그대로 지켜져야 :그리고 :의 변별이 유지된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들은 이 세 단계를 두 단계로 줄여 버렸다. 그래서 경상도 방언에서는 이미 20세기 초기에 :의 구별은 물론 :의 구별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최근의 젊은 세대에서는 전국적으로 :의 구별이 없어져 가고 있다. 입벌림의 정도를 줄이는 발음상의 노력경제 원칙이 보편화된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낱말이나 구절의 길이를 짧게 줄여 버리는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가 가가가?”(그 아이 성이 가씨냐?)와 같은 재미있는 경상도 방언이 생성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말도 단축해서 말하는 습관이 낳은 것이다. “와이카노?”(왜 이렇게 하느냐?), “이칼라카나?”(이렇게 하려고 하느냐?). 이렇게 팍팍 줄여 버린 예는 낱말에도 많다. ‘까늘라’(갓난아이), ‘일마, 글마, 절마’(이놈의 아이, 그놈의 아이, 저놈의 아이) 등등. 이처럼 짧게 만들어 발음하는 것은 노력경제 원칙에도 아주 잘 부합된다. 경상도 사람들, 이래 저래 말하는 데 게으르다.

 

 경상도 방언 화자들은 직설적 말하기를 즐겨한다. 에둘러 말하는 데 익숙치 않다. 사실 이 점은 한국인에게서 널리 관찰되는 것이지만 경상도 방언에서 좀더 심한 듯하다. 경상도 방언에서 쓰이는 직설적 표현의 전형적 예는 댔나?”, “댔다!”와 같은 표현이다. 의기투합하면 이와 같은 단 두 마디 말로 이 끝난다. 그러나 서로 뜻이 어긋나서 고마 치아뿌라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이야기 끝이다. 화끈해서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런 말 습관은 장점보다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의 말 태도로는 개인간의 원만한 인간 관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나아가 협상의 명수나 타협과 조정 능력이 뛰어난 정치가가 나오기는 더 어렵다.

 

 경상도 방언 속에는 한자어서 기원한 것이 타 방언보다 더 많다. 다른 방언에서는 계모임이라 하는 것을 이곳에서는 계추라 한다. 이는 한자어 계취’(契聚)에서 온 것이다. 함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은 겨울시안이라 말했다. 알고 보니 시안은 한자어 세한’(歲寒)이 변한 발음이었다. 대구 사람들이 많이 쓰는 시껍했다식겁’(食怯)에서 온 것이다. 사전에도 없는 동추’(洞聚, 동네 계추), ‘반태’(班態, 양반 태), ‘히추’(會聚, 모임)과 같은 단어들이 경상도에만 쓰인다.

 

 경상도 사람들의 언어 습관 다섯 가지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런 언어 습관들은 결국 경상도 사람들의 기질 혹은 품성을 만드는 데 작용했을 것이다. 사람이 언어를 만들었지만 언어가 다시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한국인을 만들고, 경상도 말은 경상도 사람을 만든다.

백두현(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