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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57   |  조회 2,035회

제39호: 퇴계와 매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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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은 매화를 소재로 하여 107수의 시를 남겼다. 이 가운데 91수를 손수 선별하여 매화시첩(梅花詩帖)으로 묶어내었다. 이 매화시첩에는 퇴계의 각별한 매화사랑이 넘쳐나 있다

 

 퇴계는 스스로 매화를 혹애(酷愛)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퇴계가 매화에 빠진 이유는? 그것이 궁금하다.

 

 퇴계는 매화의 색깔과 자태를 옥이나 빙설(氷雪)에 자주 비유하였다. 옥처럼 맑고 투명함, 빙설같이 희고 깨끗함에 먼저 시각적으로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퇴계는 매화의 그윽하고 맑은 향기를 유달리 좋아했다. 이런 색깔과 자태, 향기를 지닌 매화는 추위 속에서도 꽃망울을 틔운다. 여기서 퇴계는 매화의 그 강인한 생명력에 특별히 주목하여 매화를 혹애한 것이다.

 

 매화의 강인한 생명력을 퇴계는 고절(苦節), 곧 꿋꿋한 지조로 읽어내고 있다. 꿋꿋한 지조는 올곧은 선비의 표상이다. 그러니 퇴계는 매화의 이미지를 선비의 그것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퇴계에게 매화는 관상용 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인 셈이다. 흉금을 터놓고 자신과 교감할 수 있는 지음(知音)이라 할 수 있다. 퇴계와 매화의 이런 관계는 다음의 증답시(贈答詩)에 잘 나타나 있다.

 

寵榮聲利豈君宜   부귀와 명리가 그대에게 어울리겠는가.

白首趨塵隔歲思   티끌 속 흰머리, 지난 날 생각나네.

此日幸蒙天許退   오늘 다행히 물러감을 허락받아.

況來當我發春時   더욱이 내가 꽃피는 봄에 맞추어 오셨네.

 

 매화가 퇴계에게 준 시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퇴계가 매화의 생각을 옮긴 시이다. 매화는 퇴계의 벼슬살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해가 바뀔 때마다 벼슬살이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퇴계를 안타까워한 것이다. 빨리 벼슬길에서 벗어나 귀향하기를 매화는 간절히 바란 것이다. 이 매화의 마음이 바로 퇴계 자신의 마음인 셈이다.

 

 천만 다행으로 퇴계는 벼슬길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학수고대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으니 매화에게는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었으리라. 더구나 퇴계가 돌아오는 날이 바로 매화가 꽃을 피우는 날,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퇴계가 그토록 좋아하던 자신의 그윽하고 맑은 향기를 마음껏 맡게 할 수 있었으니.

 

 위의 시에 대해 퇴계는 아래와 같이 화답한 바 있다.

 

非緣和鼎得君宜   음식에 넣으려 그대를 얻으려 함이 아니라,

酷愛淸芬自詠思   맑은 향기 사랑하여 스스로 생각하여 읊조리네.

今我已能來赴約   이제 나는 기약 지켜 돌아왔으니,

不應嫌我負明時   밝은 시절 저버렸다 허물하지 말게나.

 

 식용의 목적으로 쓰기 위해 매화를 좋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퇴계는 어느 곳에 있든 매화의 맑은 향기를 사랑하여 항상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운 그 이름, 매화를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떠날 때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금 너에게로 돌아왔으니 나를 허물하지 말 것을 매화에게 부탁한 것이다.

 

 위의 시는 퇴계가 매화꽃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여 그 정신적 교감을 읊은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매화가 매화꽃이 아니라 첫사랑의 아련한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나에게 선비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정병호(경북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