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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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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16   |  조회 2,027회

제3호: 대구 지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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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가까운 주변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아는 듯 생각하지만, 실제로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테면 우리 대학의 교가 가사 가운데 여기 화랑이 놀던 서라벌 옛 터전에를 그런 사례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아마도 이 가사에는 작사자의 중대한 착각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서라벌은 대구가 아니라,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가리키는 말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도를 의미하는 서울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말에서 비롯되었다. 작사자는 서라벌을 신라와 같은 뜻으로 풀이하였던 듯한데, 이는 분명 잘못이다. 대구의 원래 지명은 달구벌 혹은 달벌이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여기 화랑이 놀던 달구벌 옛 터전에로 고쳐 불러야 마땅하다

 

 7~8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대구 시장으로 재직하던 모 인사가 대구의 한자 표기를 현재 통용되고 있는 大邱대신에 大丘로 바꾸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시 의회에서도 논란이 거듭되었고, 나아가 시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대부분의 대구 시민들은 어떤 의도로 그러는가 하고 무척 의아해하였다.

 

 대구의 원래 한자 표기가 大丘임은 맞는 말이다. 신라 경덕왕 16(757), 전 국토의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원래 달구벌이던 것을 大丘라 고친 것이다. 이후 그것이 정식 행정 명칭으로 약 천 년 동안 사용됐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 무렵 조선 영조 때, 지역 출신 유생인 이량채가 大邱로 바꾸자고 국왕에게 상소한 일이 있었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공자의 원래 이름이 공구(孔丘)이므로 함부로 지명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와 발음도 같으면서 동시에 뜻도 거의 비슷한 ()’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국왕이나 성인들의 이름에 들어 있는 글자를 함부로 쓰는 것을 꺼려해 사용하지 않는 관행을 흔히 피휘(避諱)라고 한다. 오래도록 사용되어 온 지명을 굳이 이 시기에 이르러 바꾸자고 주장한 것은 유학이 지방 깊숙이까지 정착하여 심지어 생활 습속까지도 바꾸어 가던 당시 사정을 잘 반영한다. 그런데 이 건의가 즉각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영조대왕 나름의 실용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아마도 지명을 고치는 데에는 많은 현실적인 부담이 당장 뒤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가면서 大丘대신에 大邱로 표기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 일종의 관행으로 굳어졌고, 이제는 정식 행정 지명으로 정착되었다. 大邱는 국가적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바뀌는 과정을 밟아 쓰인 한자인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대충 계산하여도 이 글자를 사용한 역사는 벌써 200년 정도를 헤아리는 셈이 된다.

 

 그런데도 당시 대구 시장이 갑자기 지명을 바꾸자고 주장하며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큰 소란(?)을 피웠다. , 어떤 배경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단순히 한자 표기를 바꾸기 위하여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안이한 시책이었다. 그에 따라 수많은 공식 문서는 물론이고 간판, 안내판 등을 전부 바꾸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 단지 글자 한 자를 바꾸기 위하여 그런 시도를 한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였다. 조선 후기에 大丘大邱로 바꾸자고 한 주장에는 그 나름의 명분과 이유가 뚜렷하였다. 지금 대부분의 공식 문서가 한글로 표기되는 마당에 발음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데도, 단순히 한자 하나를 바꾸어서 수십억 원의 비용을 소모하려 한 것은 황당한 일이었다.

 

 굳이 대구의 옛 지명을 찾아 나선다면 차라리 대구대신 달구벌을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너무도 오랜 역사를 지닌 순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