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Youngnam Cul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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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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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54   |  조회 3,808회

제36호: 문화가 담긴 사투리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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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사투리 속에는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이 담겨 있다. 이들이 일구어온 생활 문화와 일상의 정서가 녹아 있다. 이에 대한 이바구 몇 가지 해 볼까 한다. 방금 이바구라 했다. ‘이바구는 경상도에서 주로 쓰이는 사투리인데 아구’()가 결합한 합성어이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니 이바구라 한 것이다. ‘아구는 입이 큰 바닷생선 아구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구찜그거 먹기야 약간 거북하지만 맛은 있다. ‘동네 어귀라 할 때의 어귀아구의 사촌이다. ‘이바구의 뜻을 알았으니 이약의 맛이 더 있을 터.

 

 생김새가 지저분하고 아주 고약스러운 사람을 우스개로 놀릴 때, “! 귀신 떡다리 같은 눔아라 쏘아 붙인다. ‘떡다리떡달이는 경상도에서 쓰이지만 현재까지 간행된 어떤 국어사전에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귀신 떡다리 겉은 눔이란 말을 많이 들어 보았고, 지금도 노인들은 쓰고 있다. 떡다리가 어디서 온 말일까? ‘떡다리는 하회 별신굿탈놀이(주요 무형문화재 69)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 생김새가 아주 흉측하고 못 생긴 모양의 탈을 쓰고 있다. 아쉽게도 이 탈의 실물이 전해지지 않아 옛 형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행해진 탈놀이에도 떡다리탈이 나온다. 경상도 사람들의 일상어에서 떡다리가 많이 쓰인 것으로 보아 떡다리가 등장하는 탈춤이 안동 하회나 봉화에 국한되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떡다리 할배와 할매는 고달프게 살아온 민초들의 삶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우리 조상들의 놀이문화였던 탈춤과 연결되어 떡다리라는 낱말이 방언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이는 떡다리를 소재로 한 민중 설화가 탈춤 속에 수용된 결과로 짐작된다.

 

 ‘나부대다는 경상방언에도 많이 쓰이지만 다른 방언에도 널리 있는 공통어이다. 이것은 아주 토속적 낱말이지만 요즈음 젊은 세대들이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이 낱말은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리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짧아진 나대다도 쓰인다. ‘나부대다의 구성은 나부-대다로 분석된다. ‘나부가 무엇일까? 이 낱말은 베틀의 부분 명칭으로 있는 나부대와 연관지을 수 있다. ‘나부대는 베틀의 부속품으로, 잉앗대를 끌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대이며, 베를 짤 때 촐랑거리며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나부대-대다의 결합에서 동음생략으로 나부대다가 생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베를 직접 짜서 의복생활을 해결했던 전통사회에서 베틀은 집집마다 있는 기계였고, 베짜기는 생활의 일부였다. 그 속에서 영위된 삶의 경험을 반영한 말이 나부대다인 것이다. 지금은 그 기원도 모르고 쓰고 있지만, 이런 낱말에는 생활 문화의 경험이 파문처럼 새겨져 있다.

 

 ‘뜬금없다는 또 어떤가! ‘뜬금없다는 주로 전라방언이나 충청방언에서 널리 쓰였던 것인데 소설 등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진 낱말이다. ‘뜬금없다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만 나오고 다른 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가 있지 않다. ‘뜬금없다뜬금이 무엇일까? 장터에서 소와 같은 덩치 큰 놈을 흥정할 때 그 값을 은근히 띄워 본다. ‘뜬금은 은근 슬쩍 띄워본 가격이란 뜻이다. ‘은 가격을 뜻하는 말이다. “오새 소끔‘()이 헹핀 엄따 카데라는 말을 지금도 촌로들에게서 들어볼 수 있다. 따라서 뜬금없다먼저 값도 띄워보지 않다는 뜻이 된다.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어떤 말을 꺼내거나 할 때 뜬금없다를 쓴다. 이러고 보니 뜬금없다에 전통사회의 거래문화가 용해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계모임을 뜻하는 계추도 그렇다. ‘계추는 경상방언에서 주로 쓴다. 타 지역 사람들은 계추라 하면 잘 모른다. ‘계추는 한자어 계취’(契聚)에서 변한 말이다. ‘계취’(契聚)’()모일 취이다. ‘계추를 시골 노인들은 히추라고도 하는데 이는 회취’(會聚)가 변한 말이다. ‘회취’(會聚)의 두 한자는 모두 모이다는 뜻이다. 이런 낱말들은 경상방언 특유의 한자어이다. 조선시대 향촌사회에서는 향약을 정하여 풍속을 안정시키고 재난을 만나면 서로 도우는 풍습이 있었다. 영남의 사림들이 특히 이런 활동에 힘을 써서 지역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했다. 이러한 풍속이 언어에 투영되어 계추히추와 같은 낱말이 지역 방언에 생성된 것이다.

 

 사투리 속에 용해되어 있는 문화 지층도를 그려내고, 그것이 함축한 의미를 밝혀낸다면 한국문화의 심층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두현(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