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Youngnam Cul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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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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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53   |  조회 1,580회

제35호: 여럿이 모여 하나로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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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돈인가? 권력인가? 아니면 명예나 건강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비행과 범죄가 더욱 늘어나고 있고, 이혼과 자살 또한 증가 일로에 있다. 문명과 복지를 자랑하는 21세기는 사실 갈등과 대립, 그리고 절망으로 아득히 추락하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무표정한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언어는 현란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가득하다. 의미는 부표처럼 떠돌고 정착하지 못하는 의식은 그 방향을 알지 못한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은 낙동강에 모여드는 사방의 지류를 보며 영남의 통일된 인심을 직관한 적이 있다. “영남의 큰 물은 낙동강인데,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모여들어 한 방울의 물도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이 없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인심이 한데 모이게 하는 것이니, 부르면 화답하고 일을 당하면 힘을 합친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성호는 사방의 물이 다투지 않고 한 곳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을 이루듯이 영남 사람들 역시 여러 곳에 나뉘어 살지만 그 인심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관점과는 반대로 영남을 좌우 혹은 상하로 나누어보려는 생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정치사상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각은 16세기 이후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학단을 이끌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퇴계학파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좌도에, 남명학파는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대체로 갈등관계를 유지하며 자학파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자 노력해왔고, 연구자들 역시 이 같은 생각을 견지하면서 연구해 왔다. 그러나 대구를 비롯한 낙동강 연안지역의 지식인들은 이와 다른 생각을 갖고 회통성(會通性)에 입각하여 영남을 읽고자 했다. 성호의 영남인식은 바로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낙동강 연안지역은 영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타문화의 흡수력이 빠르다. 낙동강 물길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가 신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기호지방의 학문이 상주나 칠곡, 대구 등에서 영남학과 융합되면서 나타날 수 있었다. 이른바 기령학(畿嶺學)의 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새재는 경북 문경시와 충북 연풍군의 경계에 해당하는데 낙동강에서 배를 타고 올라갈 때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서울에서 경상도관찰사들이 부임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새재와 가까우면서 낙동강 본류가 시작하는 상주지역은 기호학과 영남학의 회통이 영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면 영남지역 송시열의 문인 53명 가운데 44명이 강안지역에 살았으며, 서애 유성룡의 제자 우복 정경세가 서인의 종장으로 성장하는 동춘당 송준길을 사위로 맞은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강안지역에 사는 선비들은 퇴계와 남명을 함께 스승으로 모시면서 퇴남학(退南學)을 회통하기도 했다. 강좌와 강우의 중간 점이지대인 강안지역은 퇴계와 남명을 함께 스승으로 모신 선비 혹은 그 후예들을 중심으로 강의 좌우를 절충하고 통합하고자 했다.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을 종장으로 한 한려학파(寒旅學派)가 대표적이다. 이 학파는 영남의 제3학파로서 강을 사이에 두고 대립한 영남의 좌우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선악이나 군자?소인 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강안학(江岸學)은 낙동강 연안의 유학사상을 의미하는 바,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는 소통과 상생의 학문을 지향한다. 남북으로는 기령학을 동서로는 퇴남학을 아우르는 회통성이 이 강안학에는 특징적 자질로 내재해 있다. 성호가 그렇게 언급하고 있듯이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모여서 하나의 큰 강 낙동강을 이룬다. 완만한 곡선으로 흐르는 이 강은 직선이 가진 폭력성을 비판하는 생태주의자이기도 하다. 마른 갈대 대궁 사이로 청명한 바람이 지나가는 가을 좋은 때,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둑으로 나가보라. 거기, 여럿이면서도 하나로 흐르는 강이 당신의 미소를 반기며 은빛 언어를 전할 것이다.

정우락(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