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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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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52   |  조회 1,478회

제33호: 금오산 자락의 갈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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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봄 무렵쯤으로 기억된다. 초로의 웬 남자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박물관장실을 찾아 왔다. 그런 부류의 방문이 비교적 잦은 터라 으레 그르려니 생각하면서 맞았다.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것저것 질문을 해대었다. 갈항사(葛項寺)라는 절을 아느냐는 둥, 승전(勝詮)스님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인생 경험담을 장황하게 섞어가면서 갈항사를 찾게 된 배경을 비롯한 온갖 이야기를 주섬주섬 늘어놓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노라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몰랐다.

 

남자는 토목업자였다. 갈항사 측의 요청으로 사찰 경내의 정지작업을 하다가 진흙 속에서 발산되는 듯한 이상한 기운을 느껴 땅을 파서 돌멩이 몇 점을 찾아내었다는 것이다. 가져온 보따리를 끌러 실물 3점을 직접 내보이면서 궁금증이 들어 갈항사의 유래와 관련되는 기록들을 여러 달에 걸쳐 뒤지다가 마침내 한계에 부닥쳐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돌들이 어떻게 보이느냐고 물어왔다. 가만히 살피니 모두 인공이 가해진 흔적이 역력하고 특히 그 가운데 한 점은 눈, 입 등을 새겨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도 매우 얕게 새겨진 상태였다. 마치 2차대전 중에 비행기 조종사가 구름 속에서 찍었다고 전해지는 예수님의 사진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언뜻 보아서는 사람 얼굴의 모습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으나 꼼꼼히 살피면 그 형상을 찾아낼 수도 있는 이상한 돌이었다. 뒷날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굴을 찾아내게 하였더니 확인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반반쯤으로 갈리었다.

 

 남자가 나를 찾은 주된 목적은 어떤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 박물관에서 혹시나 그 돌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지를 타진하려는 데에 있었다. 내가 그 돌은 역사적인 의미는 있을지언정 돈을 주고 구입할 만한 성격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였더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박물관에 안전하게 보관해 둘 터이니 갖고 있는 다른 돌 10여점도 모두 가져오라고 일렀더니 그렇게 하마고 답하고서 자리를 떴다. 그러나 이후 남자는 보관하고 있던 나머지 돌들을 갖고 경주의 동국대박물관을 비롯하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검찰로부터 도굴범으로 몰리기까지 하였다. 여러 달 지나고서 다른 십여 점을 들고 낑낑대면서 다시 찾아 왔다. 나는 그 동안 그가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돌을 받아들였다. 남자는 덧붙이기를 돌을 들고서 엘리베이트를 탔더니 절에 다니는 할머니들이 연신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빌더라는 것이었다.

 

 갈항사는 김천시 남면의 금오산 남쪽 자락 중턱에 자리하며 신라 통일기 초기에 지어진 대단히 규모가 큰 절이었다. 원래의 절은 이른 시기에 폐사가 되어버렸다. 지금 그 자리에 같은 이름의 절은 있지만 60년대 초반에 지어진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어서 일반인들에게 별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갈항사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절이어서 삼국유사에 그 창건과 관련한 이야기가 실릴 정도이다. 실제로 주변에 흩어져 딩구는 석재나 벽돌 등만으로도 당시의 위용을 쉽사리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바로 아래에 있는 보물로 지정된 신라시대의 석불상은 물론이고 중앙박물관에 옮겨져 보관되어 현재 국보로 지정된 석탑이 당시의 실상을 웅변해 준다.

 

  주보돈(경북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