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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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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51   |  조회 1,759회

제32호: 경천대에서 관수루까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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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이 상주시 사벌면 중동면 낙동면 등을 S자 형태로 굽이쳐 흐르는 약 30리 연안지역은 낙동강 유역 제1명승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경천대(擎天臺)를 비롯하여 지역 선비들의 공부 장소였던 도남서원(道南書院), 풍산류씨 우천파(遇川派)의 수암종택(修巖宗宅), 물류의 이동이 번성했던 낙동진(洛東津)과 관수루(觀水樓) 등이 물길을 따라 내려가며 차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천대(擎天臺)는 상주지역 낙동강 입구의 옥주봉(玉柱峯) 위에 있다. 뒤편이 옥주봉 정상이고, 동쪽으로 낙동강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마치 흙을 쌓아놓은 듯 평평하게 만들어진 자리를 경천대라 하였다. 원래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이 조화를 부린 것이라 하여 자천대(自天臺)라고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형상이 우뚝 하늘을 떠받히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경천대(擎天臺)라고 불렀다.

 

 경천대 옆에는 채득기(蔡得沂. 1605-1646)가 지은 무우정(舞雩亭)이란 정자가 있다. “늦은 봄날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詠而) 돌아오겠다.”라는논어(論語)구절에서 따온 이름인데, 채득기는 자신의 이름 기(), 자 영이(詠而), 호 우담(雩潭)까지 모두 이 구절에서 얻었다. 세속의 명리를 벗어나 초연하게 살아가겠다는 소망을 반영한 것인데, 그는 충청도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실제 이런 삶을 실천하였고, 김상헌 이식 등이우담십영(雩潭十詠)」「무우정기(舞雩亭記)같은 글을 지어 이를 칭송하였다.

 

 경천대 아래에서 용암(龍巖)을 거쳐 서남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오른쪽 언덕 아래 도남서원(道南書院)이 있다. 선조39(1606) 유림의 공론에 따라 설립한 서원이다. 정몽주, 이황 등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배 학자 5명을 배향하였고, 지역 인사들과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깊이 얽힌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등을 추가 배향하여 사실상 인근 지식인 사회를 주도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봄가을 향사 때는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고, 유림의 공론을 모을 때도 자주 이곳에서 문회(文會)를 개최하였으며, 모임이 끝난 뒤에는 서원 옆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벌이곤 하였다.

 

 특히 도남서원 옆의 뱃놀이는 낙동강 연안에서 역사와 전통이 가장 깊은 소중한 문화자산 중 하나이다. 고려시대 이규보 안축 이래 수많은 명사들이 이곳에서 뱃놀이를 한 기록이 있고, 도남서원 설립 이후에는 이준(李埈) 홍여하(洪汝河) 이만부(李萬敷) 정종로(鄭宗魯) 류주목(柳疇睦) 등 지역의 명망 있는 문인 학자들이 이런 문화를 새롭게 계승하였으며, 당시의 상황을임술범월록,낙강도원문회(洛江道院文會),낙강범월시회(洛江泛舟詩會),낙강선유시회(洛江船遊詩會)같은 기록으로 남겼던 것이다.

 

 도남서원 옆을 흘러내린 낙동강이 의성 쪽에서 역류해 온 위천(渭川)과 합류하는 지점에 수암종택(修巖宗宅)이 있다. 유성룡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珍)이 터를 잡아 지금까지 약 400년에 걸쳐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인데, 류심춘(柳尋春) 류후조(柳厚祚) 류주목(柳疇睦) 같은 큰 학자가 한 집안에서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아래쪽 낙동나루와 관수루(觀水樓)는 경상도의 동서남북을 뱃길로 매개하는 요충지였고, 이곳을 지나는 무수한 문인 학자들의 주요한 문학창작 공간이었다.

 

 경천대에서 관수루까지 이어진 상주지역 낙동강 연안은 이처럼 빼어난 경관과 문화유적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영남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망각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적막한 강가에는 배 한척 볼 수 없고, 서원과 종택은 빈집과 다름없으며, 낙동나루 위에는 큰 다리가 놓여 가끔 자동차의 굉음이 요란할 뿐이다. 세월의 무상함으로 돌리기엔 너무 허전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황위주(경북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