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Youngnam Culture Research

top

영남문화산책

홈 > 열린마당 > 영남문화산책

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50   |  조회 1,820회

제31호: 경상도의 한글 음식조리서 전통과 음식맛

본문

​​

 지금도 그러하지만, 조선시대의 전통사회에서 곳간 열쇠를 쥐고,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여성들의 가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 조리였다. 음식 조리는 나날의 식생활은 물론,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중요한 책무였던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름 있는 양반가에서는 나름대로 특유한 음식조리법을 만들어 이를 기록하였고, 그 책을 대물림하였던 것이다. 좋은 음식을 잘 만드는 방법을 알아 내고, 이를 딸과 며느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한글로 된 음식조리서를 짓거나 베껴서 소중히 간직했던 것이다

 

 아직도 옛 법도를 지키려고 애쓰는 경상도의 몇몇 종가에서는, 집안에 전해오는 특유한 음식을 중요한 집안 행사나 손님 접대 자리에 내놓는다. 경주 양동마을에는 지금도 고유의 가양주를 접빈객용으로 빚고 있다. 이 양동 마을에서 자란 할머니 말에 따르면, 어렸을 적 집안의 술곳간에는 40-50개의 술단지들이 놓여 있었고, 오는 손님의 등급에 따라 각각 다른 단지의 술이 걸러졌다고 한다. 이처럼 술빚기는 종가 운영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흔히 전라도 음식에 비해 경상도 음식을 혹평하는 이야기를 필자는 여러 차례 들어 봤다. 최근에는 많이 달라져 경상도에도 맛난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말도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필자는 좀 의아스러운 느낌을 갖는다.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한글 음식조리서는 경상도에서 나온 것이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 음식조리서로서 가장 오래되고 종합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는 <음식디미방>은 영양을 중심으로 한 경북 북부지방의 요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안동 내앞 마을의 의성 김씨 종가에서 나온 조리서 <온주법>에는 종가의 음식 방문이 다채롭게 실려 있다. 게다가 전통 음식 조리의 내용을 가장 풍부하게 집대성한 <시의전서>, 1919년 상주 군수로 부임한 심환진이 상주의 양반가에 있던 책을 보고 베낀 것이다. 이 책은 전통 음식 조리서의 종합판으로 <음식디미방>과 함께 한국 음식학의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탁월한 음식조리서가 이 지역에서 지어지고 전해져 왔는데, 경상도 음식이 좋지 않은 평을 받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본다. 하나는 경상도의 밥상에는 반찬 가짓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치, 된장을 포함한 밑반찬 서너 개와 국그릇이 오르는 것이 전부다. 전라도 밥상에 오르는 반찬 가짓수에 비하면 초라하게 보인다. 그래서 먹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구 명물이라고 알려져 있는 따로국밥은 국밥 한 그릇에 무시짐치한 그릇이 전부이다. 경상도 음식에 익숙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손이 가는 반찬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밥상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은 검박과 절제를 중시하는 경상도 선비들의 가치관과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경상도의 음식상에 오르는 반찬류가 좀 맵고 짜다는 점이다. 서울 토박이들은 경상도의 소고깃국에 벌겋게 뿌려진 고춧가루를 보고 깜작 놀라기도 한다. 무를 넣어 담백하게 끓인 소고깃국을 즐기는 사람에게, 경상도식 소고깃국은 맵고 짠 대표적 음식이다. 맵고 짠 맛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맛을 느껴 볼 겨를도 없이, 그 음식에 호감을 잃고 만다.

 

 최근 영양군에서는 <음식디미방>의 옛 음식을 재현하고, 옛맛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경주에서도 떡축제를 열어 신라 천년의 음식맛을 재창조하여, 관광객의 입맛을 당기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안동시는 간고등어를 명품으로 만들었고, 영천 돔배기도 별미의 왕꿈을 꾸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경상도 음식맛의 전통을 되살려 내어, 음식조리에 관한 경상도 지역의 명예를 회복케 할 듯하다. 그리하여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먹는 즐거움이 빚어내는 행복의 맛을 더욱 자주 누리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백두현(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