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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44   |  조회 2,841회

제26호: 경상도 말의 보수성과 진보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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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사람들을 보수적이라고 흔히 말한다. 경상도 사람들이 보수적이라 할 때, 여기에는 유교적 전통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강하게 잔존되어 있는 점과 결부되어 은연 중에 부정적 평가가 내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는 상호 견제하면서 역사 발전의 두 기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보는 이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고, 보수는 이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뚝심이다. 어떤 사회 체제와 문화 전통을 유지해 나가는 힘은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에 바탕을 두고, 사회 변화와 새로운 발전은 진보적 태도에 의해 추동된다. 진보와 보수는 살아있는 존재를 굴러가게 하는 본질적 두 측면이어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정해 버리는 관계가 아니다.

 언어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진보성과 보수성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어의 일부인 경상방언도 이 두 측면을 다 갖고 있다. 경상방언의 보수적 요소는 고저 악센트가 있다는 점, ‘더버라’(더워라), ‘나사서’(나아서) 등의 발음에 고어형이 유지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경상방언에 나타난 진보성의 대표적인 예는 단모음의 수가 6개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라는 네 개 단모음은 타 방언과 같으나, 경상방언에서는 가 합류되어 하나로 되었고, 도 구별이 안되어 모두 6개가 된 것이다. 경상방언의 여섯 개 모음체계는 일반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안정적이고 균형잡힌 것이다.

 방언의 진보성은 새로운 낱말을 만드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그 중의 하나가 낭창하다이다. ‘낭창하다는 경상도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 이 낱말은 대체로 90년대 초부터 쓰인 듯하다. 그러니 생겨난 지 15년 정도 되는 신조 방언인 셈이다. 90년대 초의 대학생들이 이 말을 쓰는 것을 많이 들어 보았다. 요즘은 나이든 사람도 이 낱말을 더러 쓴다. 서울사람이나 타 지역 사람들이 처음 대구에 와서 이 낱말을 들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여러 번 들어도 그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낱말이 낭창하다이다. 이 낱말의 뜻은 뭔가 속엣것을 감추며 내숭떠는 행동거지나 태도가 있다는 뜻으로 쓰이거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늘어져 있다는 또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낭창하다’(朗暢-), ‘낭창하다’(걸음걸이가 비틀거리거나 허둥대어 안정되지 아니하다), ‘낭창낭창-하다와는 뜻 차이가 커서 서로 견주어 보기 어렵다. 뭔가 숨기며 내숭떠는 태도가 있음을 뜻하는 낭창하다는 경상도 특유의 신조 방언인 셈이다.

 경상방언에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신조 어휘로 뻔치를 들 수 있다. ‘뻔치는 국어 사전은 물론 방언자료집에도 전혀 나오지 않는 말이다. ‘펀치’(주먹)의 일본식 발음인 뻔치는 신조 방언 뻔치와 발음이 비슷하지만 음절의 고저가 다르고 그 뜻도 전혀 달라서 같은 낱말로 볼 수 없다. 경상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 낱말을 쓴다.

걸마 그거, 뻔치는 디기 조터라

 그런데 이 뻔치는 옛문헌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낱말은 아마도 20세기 후기에 대구 주변이나 경상도권에서 생겨난 말로 보인다. 타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이 낱말을 전혀 모른다. 뻔치뻔뻔스럽다의 어근 뻔뻔에서 을 따고 여기에 접미사 ‘-를 붙여 만들어낸 경상도판 신조 방언이다.

 그리고 뻘쭘하다라는 신조 어휘는 경상도 특유의 것은 아니지만 이 방언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뻘쭘하다틈이 벌어지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어색한 태도가 있다는 뜻을 가진 새로운 방언 어휘이다. 이 낱말은 젊은 층에서 주로 쓰이며 여러 지방에서 널리 쓰인다. ‘뻘쭘하다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표준어에 버름하다라는 단어가 있다. ‘버름하다마음이 서로 맞지 않다혹은 물건의 틈이 조금 벌어지다는 뜻이다. 버름하다의 사투리로 벌쯤하다’(새우리말 큰사전)가 있다. ‘벌쯤하다가 다시 변하여 뻘쭘하다가 된 것이다. 이처럼 방언은 인간의 정서와 사회 변화를 담은 새로운 낱말을 계속 만들어 내면서 진보의 선두에 서기도 한다.

 

백두현(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