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Youngnam Cul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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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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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08   |  조회 1,524회

제1호: 영남문화의 새로운 발견을 위하여

본문

​​ 요즘 들으니, 영남의 사족(士族) 중에는 상··하의 세 층위가 있다고 한다. 층위가 다르면 서로 혼인도 하지 않는다. 그 낫고 못한 것은 벼슬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선현들의 자손이거나 그 문하에서 수학한 사람들의 자손들을 기준으로 하여, 서로 골()이 되는 양반이라고 지칭을 한다. 양반이란 사족의 칭호이며, 사족이 아니면 비록 조정의 벼슬아치라도 참여할 수 없다. 또한 유림들이 모여서 의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 사람들의 뜻에 따라 일을 결정하며, 처음부터 영남에 살던 사람이 아니면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위의 글은 성호 이익(1681-1763)이 그의 성호사설에서 언급한 것이다. 성호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통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의 근기 실학을 성립한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그는 위의 언급에서 영남 문화는 양반들끼리의 문화이며, 영남 사람들은 토착성이 강하여 다른 지방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영남의 배타성과 폐쇄성을 지적한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결국 영남의 보수성으로 귀결된다. 오늘날 우리 영남인에게 날아드는 대부분의 화살이 이 보수성과 일정한 맥이 닿고 있어 흥미롭다.

 성호는 영남 지방 양반 문화의 원천을 신라의 골품제에서 찾았다. 골품제는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규제를 가하는 신분 제도로, 세습성이 강하고 신분 간의 배타성이 심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성호가 지적한 것처럼 영남 지방에서는 같은 문하생이라는 학연이나,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지연이 강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유림들이 모여서 의논을 하여 중의에 따르는 것은 그 원천이 신라의 화백 제도에 있다고 했다. 만장일치의 합의 정신을 가장 존중하는 것이 화백 제도이니, 이것이 바로 유림들의 회의 제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영남의 문화적 전통 속에 영남인의 현재가 놓여 있다. 영남 문화는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문화적 보편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호남 지역이나 충청 지역과 변별되는 영남 지역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입각해서 성호는 조선의 영남 문화는 고려적이라기보다 신라적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골품제나 화백 제도에서 영남 문화의 기원을 찾았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 후기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성호의 이 이야기는 240여 년 전의 것이지만, 2007년 현재의 영남 문화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가 않다. ‘영남 문화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영남 문화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여야 하며, 이것이 디지털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어떠한 창조적 가치로 재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역성 너머에 있는 보편성을 확인하고, 그 보편성이 미래의 한국을 위하여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영남 문화 산책'경북대신문'이라는 지역의 대학 신문 한 귀퉁이에 연재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의미가 미약한 것은 아니다. 우리 대학의 구성원들 가운데 영남 지역 사람들에게는 자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이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남 문화는 무겁지만 그것의 산책은 가볍다. 영남 문화를 진지하면서도 경쾌하게 풀어가자는 의도에서 이 난의 이름을 영남 문화 산책이라 하였다. 역사와 종교, 언어와 문학을 가로지르고, 유물과 유적,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영남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를 통해 영남인의 의식에 묻어 있는 특수한 자질을 새롭게 발견하길 바라며, 그 발견의 기쁨이 우리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하기를 기대한다.

 

정우락​​​​(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