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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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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35   |  조회 1,694회

제18호: 옛 한글 문헌 속의 경상도 말

본문

​​ 영남지방은 문헌의 보고이다. 조선시대의 여러 지방 감영에서 각종 문헌을 간행했는데, 영남감영이 타 지역 감영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책을 간행했다. 이 문헌들은 대부분 한문으로 된 것이지만 한글 문헌도 적지 않다. 한글 반포 직후에 한글 문헌은 서울에서만 간행되었다. 지방에서 최초로 간행된 한글 문헌은 1500년에 합천 봉서사에서 간행한 목우자수심결이다. 이 책은 보조국사 지눌이 승려들에게 수행법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것이며, 초간본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되었다(1467). 이어서 경상 감사 김안국이 이륜행실도, 잠서언해, 경민편언해, 정속언해, 농서언해등을 한글로 간행하였다. 특히 정속언해는 초간본이 전해지는 것으로 언해’(한글 번역)이라는 이름을 처음 달고 나온 책이다. 그 후 한글 번역서의 책이름에는 대부분 언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최초의 지방 간행 한글 판본이 경상도에서 나왔고, ‘언해라는 이름을 단 한글 판본이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간행된 것이다

 

 예천 광흥사에서는 월인석보211542년에 간행하였고, 풍기 희방사에서는 훈민정음 언해가 붙어 있는 월인석보1, 21568년에, 칠대만법1569년에 간행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1704년에 예천 용문사에서 간행한 염불보권문이다. 이 책은 일반 서민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승려 명연이 여러 경전의 염불에 관한 글을 간추려 언해·간행한 것이다. 이 책이 나오자 전국 여러 지방의 사찰에서 각 지방의 방언을 고려하여 문장과 어휘를 고쳐 중간판을 간행했다. 그리하여 전라도 선운사, 황해도 흥률사, 평안도 용문사, 팔공산 수도사, 합천 해인사 등에서 간행한 한글판 염불보권문이 대중에게 배포되었다. 이런 불교 서적은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간행된 한글 문헌의 수는 서울을 제외하면 경상도 지역의 것이 가장 많다. 경상도에서 나온 한글 문헌에는 당시에 쓴 경상도 사람들의 언어와 생활 문화가 녹아들어 있다. 남해문견록18세기에 유의양이 경남 남해에서 귀양살이 할 때 그곳의 언어와 풍습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는 오늘날 경상도 방언으로 쓰이는 저그’(저희), ‘너그’(너희), ‘가시나’(딸애), ‘올체혹은 올키’(올케), ‘묵어라’(먹어라), ‘함부래’(절대로), ‘돌라’(달라), ‘팽팽 걸어라’(빨리 걸어라), ‘빼뿌쟁이’(질경이), ‘그러기’(기러기), ‘삐가리’(병아리), ‘칭이’(), ‘강낭수수’(강냉이, 옥수수), ‘작지’(지팡이), ‘거싱이’(지렁이), ‘다리비’(다리미) 등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문헌을 통해서 우리는 지역 방언의 역사적 유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해인사판 염불보권문은 밀양에 사는 현 씨 부인의 뜻을 받들어 간행한 것이다. 이 책 끝에 현 씨 부인의 행적이 당시의 사투리로 적혀 있다. ‘현씨션씨로 적거나 숨믈일곱’, ‘부쳬임등이 그런 예이다. 한편, 최근 해인사 불상을 조사하던 중 불복장 유물로 의복이 나왔는데 그 의복에 현시 갯동 현증 복슈”(씨 갯동 顯證 福壽-필자)라는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현 씨의 발원문이 붙어 있는 목판본을 새길 때 이 옷을 불복장에 안치했던 듯하다. 한글 문헌의 기록과 상응하는 의복의 주인공이 나타남으로써, 우리는 18세기 후기를 살았던 한 여인의 소망과 함께 당시의 언어를 엿볼 수 있게 됐다.

벡두현(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