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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32   |  조회 1,496회

제16호: 한국 최초의 주간 문예지에 실린 대구의 표정

본문

​​ 한국 최초의 주간 문예지 태서문예신보1918. 9월에 창간되어 19192월 통권 16호로 종간된 타블로이드판, 8면의 문예지이다. 타블로이드판은 신문지 절반 정도의 크기로 신문의 형식을 띠지만, 제본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잡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제목이 보도 기능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나 매호 사설을 싣고 있다는 점에서 신문의 성격도 다소 지니고 있는 과도기적 문예지라 할 수 있다. 시와 소설 등 창작 작품도 있지만, 서구 문예의 도입과 소개라는 목적에 맞춰 번역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태서문예신보10(1918. 12. 7.)에는 대구를 여행하면서 느낀 바를 편지글 형식으로 서술한 흥미로운 수필이 실려 있다. 백웅(白熊)이라는 사람이 쓴 ?대구에서?라는 제목의 글이 그것이다. ‘해몽(海夢) 형님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나는 지금 조고마한 대륙에 와 있습니다. 이 대륙에 대한 나그네 살림이란 나에게는 참 처음이올시다.”로 시작한다. 필자인 백웅은 대구에 처음 와 본 사람인 모양인데, 그 첫인상을 조고마한 대륙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립되면서도 넓은 내부 공간을 지닌 분지 대구의 풍경이 그에게 그렇게 비친 듯하다. 그 느낌을 남성적 아니 멀고도 큰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구 풍경에 대한 평에 비하여 대구 사람살이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대구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마지막 부분에 직접적으로 표현되는데, 관련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살림이란 도모지 먹음, 입음에 더 지나지 못한 것이지요. 밝을 구하는 바 방법이 협의적 광의적됨을 따라 우리의 생이 혹은 거룩함도 생기는 것이고, 혹 아름다움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곧 이것을 광의적으로 구하는 자가 곧 사업가이지요. 아니 거룩한 사람이지요. 이를 생각할 것 같으면 대구에 사는 동족들을 과히 비웃을 것은 없겠습니다. 그러하나 그 동족들이야말로 생활욕이 어찌 그다지 단순한지 놀랄 듯하였습니다. 오직 밥, 옷에 더 지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돈이라면 눈들이 벌겋지요. 아니 밥, 옷이라면 눈들이 벌겋습니다. 제법 사람살림의 맛을 모르는 그네들이어니 무슨 예술의 맛을 아오리까.”

 

 여기에 나타나는 대구 사람살이의 표정은 참혹하다. 대구의 동족들은 생활욕이 단순하여, 오직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구 사람들은 삶의 참맛을 모르니 예술의 맛도 알지 못하는 가련한 종족에 지나지 않는다. 근대 문예지에 실린 최초의 보고 치고는 참으로 인색한 보고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에는 새로운 문학적 좌표를 추구하는 근대 문인의 책무감과 우월의식이 물씬 묻어난다. 그 때문에 부분적인 인상을 무분별하게 확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쓴 소리에서도 대구 지역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이 지역의 포용력과 역량을 보이는 방법이 아닐까? 한국 최초의 주간 문예지가 보고한 대구의 부정적인 상황은 물질지상주의이다. 이것의 타개는 물질지상주의의 예술적 지양에 있다. 대구시의 구호가 컬러풀 대구가 아닌가. 황금만능주의의 단일한 황금색이 아니라 다양한 삶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다채로운 빛깔의 대구로 거듭나는 것이 이 독단적인 수필을 반박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박현수(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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