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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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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5:25   |  조회 1,647회

제9호: 서거정이 본 침산의 저녁노을

본문

​​ 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이며, 또한 거기서 어떤 경치를 보면 더욱 멋이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성못의 가을 풍경이 제격이라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신천에서 보는 저녁노을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대구에 그런 것이 어디 있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도시생활을 하는 우리는 아름다운 경치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산다. 막힌 콘크리트 벽 안에서 컴퓨터를 통해 세상과 교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감성의 샘이 이미 말라버렸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대구의 경치로 흔히 서거정의 대구 10을 떠올렸다. 서거정은 달성을 본관으로 하는 대구 사람이다. 그는 경산군 압량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주로 서울에서 생활하였다. 19(세종 20)에 진사시와 생원시에 장원을 하였고, 세조 13년에는 조선조 최초로 홍문관과 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이 되었다. 그는 대표적인 관료 문인으로 조선의 문풍을 주도하였으며, 특히 동문선(東文選)을 편집하여 우리나라에도 중국 못지않은 문학이 있음을 보였다. 고향 대구를 위해 대구십영(大丘十詠)을 짓기도 했는데 그 중 침산의 저녁노을(砧山晩照)은 이렇다.

 

물은 서쪽에서 흘러들어 산머리에서 그치고,     水自西流山盡頭,

푸른 침산에 맑은 가을이 왔구나.                     砧巒蒼翠屬淸秋.

저물녘에 어디서 다듬이 소리 급하게 들리는고晩風何處?聲急,

한결같이 지는 해에 맡긴 채 객수를 두드리네.     一任斜陽搗客愁.

 

 물이 서쪽에서 흘러들어 산머리에서 그친다고 한 것은 지금의 신천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침산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다듬잇돌 산인데, 이는 산 모양에서 이름이 나온 것이다. 이는 곧 북구 침산동에 있는 지금의 오봉산(五峰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천이 끝나는 자리에 있다. 신천의 물은 침산을 끝으로 하여 금호강과 합수한다. 거기서 서거정은 청량한 가을을 맞아 저녁노을을 바라보았고,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 나그네의 수심을 쓸어내렸다. 다듬이 소리가 자신의 객수를 두드린다고 하여 절묘한 시적 효과를 얻기도 했다.

 

 서거정은 어떤 수심이 있었을까? 그는 여섯 왕을 섬기면서 6조 판서를 두루 거쳤고, 대제학을 23년이나 하면서 문형을 관장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의 수심은 이 같은 화려한 외양 이면에 있는 인간의 어떤 근원적 고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찾은 곳은 신천이 끝나는 침산이었으며, 때는 한 해가 기우는 가을이었고,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이었다. 거기서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겨울을 준비하는 아낙들의 다급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나그네로서의 고독감을 쓸쓸하지만 아름답게 그려냈던 것이다.

 

 대구 10경을 그린 작품은 침산의 저녁노을외에도 금호강의 뱃놀이(琴湖泛舟), 입암에서의 낚시(笠巖釣魚), 거북산의 봄 구름(龜峀春雲), 금학루의 밝은 달(鶴樓明月), 남소의 연꽃(南沼荷花), 북벽의 향림(北壁香林), 동화사의 중을 찾음(桐華尋僧), 노원에서의 송별(櫓院送客), 팔공산에 쌓인 눈(公嶺積雪)등이 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 장소는 대체로 고증되어 있으며, 답사를 통해 당시의 풍경을 상상해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서거정의 대구 10을 통해, 나는 우리 대학의 아름다운 경치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월파원에서 보는 초승달(月坡新月), 매화동산에서 맡는 꽃향기(梅苑聞香), 도서관의 밝은 불빛(書樓明燈)등 다양한 풍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월파원은 야외박물관이고 매화동산은 대학원동 옆에 새로 조성되었다. 아름다운 정경을 찾아 가꾸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는 곧 자신의 삶을 가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대구에도 경북대에도 아름다운 정경은 무수하다. 우리의 마음이 순수한 서정을 잃지 않는 한!

 

정우락(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