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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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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12   |  조회 1,554회

제53호: 선산(善山)의_산유화(山有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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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학자 이중환 [李重煥, 1690~1756]은 그의 저술인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선산[구미시,선산군]은 야은 길재 선생의 뒤를 이은 충절의 고장이요, 효자 열녀가 즐비한 효행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곳 선산에 전해오는 노래 산유화가는 이 땅 민초들의 노래소리가 단순히 삶의 애환만을 토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품은 그 땅의 예속(禮俗)이나 풍교(風敎) 등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옛 선산의 군지인 일선지(一善誌), 이광정(李廣庭)눌은선생문집訥隱先生文集, 엄경수(嚴慶遂)부재일기孚齋日記및 증보문헌비고(106 악고 속악부 조) 등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남아 전한다.

 숙종 무인(戊寅)년간 9월에 선산에 일찍이 과부가 되어 수절하고 있는 향랑(香娘)이라는 아녀자가 있었는데, 그 부모가 재혼을 강요함에 이를 이기지 못하여 길재 선생의 묘비가 있는 낙동강 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고 투신하였는데 그 노래가 <산유화가(山有花歌)>라는 기록이다.

 

하늘은 높고 높고 / 땅은 넓디 넓은데 / 이 한 몸 둘 데 없네

차라리 물속에 잠겨 / 고기뱃속에 묻힐거나

(天高而高 / 地廣而廣 / 此身無所容 / 無寧水相沈 / 長爲魚腹葬 )

 

 이 노래에 얽힌 정절의 덕행은 후대 전해져 많은 시인 묵객들에 의해 노래되거나 차운(次韻)되어 오늘에 전한다. 이학규(李學逵)영남악부嶺南樂府, 신유한(申維翰)청천집靑泉集,윤정기(尹廷琦)동환록?등에 전하는데, ‘山有花’, ‘山有花歌’ ‘山有花曲’, ‘山有花女歌’,‘?娘謠’, 이덕무(李德懋)香娘詩’, 이안중(李安中)山有花’, ‘山有花曲’, 이노원(李魯元)山有花曲’,‘山有花後曲’, 또 이유원(李裕元)山有花’,이우신(李友信)山有花’,김창협(金昌翕)山有花三章등등은 모두 향랑을 정절을 기린 시 작품들이다.

 영남의 토속민요를 음악적으로 메()나리토리 가락의 노래라 일컫는데, 혹자는 이 메나리라는 말을 한자로 옮긴 것이 산유화라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메나리+아리(소리)‘라는 말로 장식이 없는 민소리라는 뜻이다.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의 우리나라 동부지역 민요가 꺾거나 맺거나 하는 화려한 기교 없이 밋밋하게 멋없이 부르는 소리이기에 메/매나리소리라는 말이 생겼다. 간혹 강원도에서 <모심기소리>산유화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메나리로 밋밋하게 부르기에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26,백제가요 조)<산유화가>라는 남녀상열지사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노래 또한 향랑고사의 이 노래와는 무관하다.

 지금 선산지역에는 산유화가라는 민요는 사라졌으나 그 설화는 남아 전하고 있다.

 

김기현(경북대 국문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