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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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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10   |  조회 2,079회

제51호: 경상도에서 간행한 불교 포교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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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불교는 고려시대에 비해 그 위상이 현저히 낮아졌다. 배불숭유(排佛崇儒)라는 국정 방향에 따라 수많은 사찰이 없어졌다. 불상과 범종을 녹여 금속활자와 무기를 만들었으며, 종파가 통합되면서 승려의 수도 격감하였다. 그러나 유교는 현세의 삶에만 관여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하였다. 죽음의 문제는 인간의 영원한 숙명이다. 유교적 삶을 실천한 조선시대의 유학자들 상당수가 가정생활에서는 불교적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불교는 백성들의 삶 속에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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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화하는 데는 한글이 크게 기여하였다. 세종대왕은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붓다의 일대기를 담은 "석보상절"은 한글로 편찬 간행하였고, 대왕께서 이 책을 보고서 손수 찬불가 "월인천강지곡"을 지으셨다. 세조 대에는 간경도감이라는 불교서 간행 기관을 나라에서 세워 많은 한글 불교서를 출판하였다. 이러한 책들은 모두 불교의 사상과 교리를 해설하는 것이어서 그 내용이 고매하고 매우 어렵다. 그리하여 일반 민중들은 이런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이 귀하기도 하였을 뿐 아니라 불교에서 가르치는 진리의 이치가 매우 난해했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일반 백성들이 직접 접할 수 있게 만든 책은 18세기에 가서야 간행되었다. 이 책이 바로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인 바, 책의 제목은 염불을 널리 권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1704년에 예천의 용문사에서 한글 목판본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필자가 19957월에 예천의 용문사를 찾아가 이 판목을 직접 보기도 했다. 이 책은 그 후 1764년에 팔공산 동화사에서 판목을 새로 새겨 간행하였고, 1776년 합천 해인사에서 간행한 것도 있다. 이밖에도 전라도 무장 선운사에서 간행한 것과 황해도 구월산 흥률사에서 간행한 판본도 있다.

 

 이 책은 경상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간행되었다. 경상도에서 간행한 원간본을 가져다가 다른 지역의 사찰에서 중간하였다. 경상도에서 처음 간행한 관계로 이 책에는 경상도 방언의 모습이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예천 용문사 판에는 젼쥴 듸 업거를’(견줄 데 없거늘), ‘불 셔고’(불 켜고), ‘갈라 ?’(가려 하고), ‘집픈’(깊은), ‘쥐견?니라’(죽였느니라)와 같은 방언 어형이 나타나 있다. 이들은 1704년 당시 경상도 예천 사람들이 쓴 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 책의 간행 목적이 민중들에 대한 포교였던 만큼 민중들이 읽을 수 있도록 언문으로 쓰고, 또 그들이 일상어에서 쓰는 말로 글을 지었던 것이다. 이 책들에는 군데군데 대강 불법을 아도록? 언문으로? ? 알게 ?뇌다와 같은 문장이 나오는 바 불교 포교서로서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동화사판과 해인사판에는 용문사판과 일부 다른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당시의 경상도 방언을 반영하고 있음은 마찬가지다.

 

 특히 해인사판 "염불보권문" 맨 끝에는 판을 새기고 책을 만드는 데 시주를 한 현씨(玄氏) 부인의 행적이 실려 있다. 경상 좌도 밀양에서 사는 현씨 부인이 있었다. 기사년 납월 어느 날, 마침 가사 입은 중이 와서 시주를 청하거늘 현씨가 문득 신심을 내어 시주를 하였다. 그날 밤 삼경에 부인의 입에서 저절로 염불이 나오니, 현씨는 추위 더위 밤낮을 잊고 염불 독송하니 삼년 반에 부처님을 친견하였다. 그 후 현씨는 스물 일곱 해 동안 삼계행을 닦고 염불하였다. 현씨가 임종에 이르러 자손을 모아 두고 보권문을 새겨 널리 펴라고 유언하였으며, 이런 인연으로 해인사판 ??염불보권문??이 탄생한 것이다.

 

 경상도의 세 지역(예천, 대구, 합천)에서 각각 찍어서 펴 낸 보권문은 모두 18세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염송하면 아미타불의 인도를 받아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조선의 불교가 민중 속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현실적 대응을 했는지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불교 교리는 깊고 오묘하여 그 정수를 깨닫기가 참으로 어렵다. 보통의 백성들이 이 진리를 깨달아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백성들을 구제하는 방법이 바로 염불 삼매경에 있음을 설파한 것이 이 책이다.

 

 오늘날의 한국에서 불도(佛道)가 가장 센 곳은 경상도라고 흔히 말한다. 이렇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염불보권문"이란 책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 인민이 친숙히 쓰는 말을 한글 문장으로 지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했던 ??염불보권문??은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 책이었다.

백두현(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