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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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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문화연구원   |  등록일 16-03-10 16:07   |  조회 2,555회

제47호: 지리적 형세로 본 경상도 문화의 성립 배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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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옛 지도를 보면, 백두산에서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흐름이 참으로 뚜렷이 나타난다. 경북대학교 출판부에서 원전의 크기와 색채 그대로 영인한 ??동여비고??(東輿備攷)(44-45, 79)를 펼쳐 보자.

 

 백두산 천지(天池)에서 시작되는 큰 줄기가 압록강을 건너 비백산(鼻白山)에서 서쪽으로 머리를 돌려 백적산(白赤山)에 이르러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남으로 치달으며 함흥의 서쪽을 흘러내린다. 금강산에 이르러 큰 봉우리와 기암절벽으로 한껏 자태를 뽐내며 우쭐거리다가, 설악산으로 건너 뛴다. 설악의 기묘한 봉우리들은 금강산 일만이천봉과는 또 다른 풍격(風格)을 자랑하며 동해안 서쪽을 따라 내려오다가, 오대산에서 다시 한번 큰 마디를 만들고 태백산으로 이어진다.

 

 태백산에서 산맥은 크게 둘로 갈라져 하나는 서쪽으로 향하고, 하나는 동해안을 오른쪽에 끼고 영양의 일월산, 청송의 주왕산과 비학산을 따라 내려오다가, 양산과 울산 사이에 놓인 원적산(圓寂山)과 윤산(輪山)에서 꼬리를 사리며 백두대간의 대미(大尾)를 접는다. 서쪽으로 향해 달리던 줄기는 문수산, 영지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 서쪽 끝에 이르러 머리를 크게 쳐들어 속리산을 이룬다. 속리산을 빠져 나온 산맥은 방향을 다시 남쪽으로 돌려, 금릉의 황악산, 거창의 삼봉산과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런다. 커다란 몸집과 깊숙한 골짜기를 가진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은 비로소 큰 꼬리를 사리며 한반도 남쪽 끝 깊이 뿌리를 박는다. 덕유산과 지리산에서 작은 산맥들이 동쪽으로 갈라져 경상도 안으로 흘러 들어오며 함양과 거창에 1000미터가 넘는 십여개의 봉우리를 우뚝우뚝 세우고, 한켠으로는 합천의 가야산, 금릉의 수도산 등의 큰 봉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백두대간의 이러한 흐름에서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소백산에서 속리산으로 이어지면서 험준한 산맥이 이루어져 경상도와 충청도 사이에 병풍을 세운 것이나 같은 형세가 되었다. 그 산맥의 흐름 중 낮은 곳을 골라 몇 개의 고개가 생겨나니, 새재[鳥領], 이화령, 추풍령이 그것이다. 이 고개들은 경상도와 북쪽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었지만, 험준한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어서 예전에는 특별한 일(과거 응시 따위)이 아니고는 경상도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속리산에서 덕유산, 덕유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경계지으면서 동서를 가로막는 병풍 구실을 하였다. 이것이 백제 문화권과 신라 문화권을 나누는 것이 되어 오늘날까지 생활권의 한 벽을 이루고 있다.

 

 북쪽의 산맥과 서쪽의 산맥이 ?과 같은 꼴의 병풍처럼 경상도 북쪽과 서쪽을 가로막고, 동으로는 동해, 남으로는 남해로 바다를 접하니 경상도의 지세는 매우 고립적인 형국이 된 것이다. 경상도 내륙에는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남북으로 길게 흘러내리며 경상도를 관통한다.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 경제에서 낙동강은 생명의 젖줄이나 다름없다.

 

 경상도의 이러한 지세와 형국은 지역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신라는 외래 종교인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면서, 그 수용 과정에서도 고구려나 백제에서 볼 수 없었던 내부 저항이 있었다. 이차돈의 순교와 같은 극적인 사건을 겪고서야 그 저항이 수그러들었다. 이러한 사건은 백제와 고구려에 없었던 것이며, 신라 고유의 토착신앙 혹은 사상의 이 뚜렷했음을 의미한다. 토착신앙이 강한 곳에서 외래 사상이 들어올 때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차돈의 순교는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지리적인 고립성과 독자성 그리고 이에 따라 형성된 사상적 고유성을 기반으로 경상도 지역은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 문화의 전개에서 특별한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조선시대 퇴계와 남명이 이룩한 사상적 심화와 실천이 경상도 지역에서 이룩되었고, 최제우가 경주에서 동학을 창시한 사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사상의 전개 과정에서 경상도 지역은 타 지역과 구별되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지리를 배경으로 하여 경상도 지역 특유의 문화와 방언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백두현(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